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 전상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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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루다,《W》, 2020 / 사진: 옥상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플랫폼엘의 인터뷰 시리즈〈L-INK〉
플랫폼엘과 오랫동안 함께해 온 작가들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적인 연결을 희망하는 의미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L-INK〉입니다. 플랫폼엘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작가들의 예술적 여정을 조명합니다. 이를 통해, 과거 플랫폼엘에서 전시와 공연,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작가들의 근황을 공유하며, 앞으로도 창작 교류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플랫폼엘과 함께 한 순간을 돌아보고,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또 다시 연결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합니다.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예술과 공간, 사람을 잇는 대화의 장이 되길 기대합니다.
《2023 PLAP》 최우수 선정작 〈디스토피아3〉 이루다 작가 인터뷰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는 2017년부터 다원예술 기획 공모 《플랫폼엘 라이브 아츠 프로그램 (Platform-L Live Arts Program, PLAP)》을 통해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의 예술을 발굴하고 지원해오고 있습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 《PLAP》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시도들이 꾸준히 무대화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2023 PLAP》 최우수 선정작 〈디스토피아3〉을 선보인 이루다 안무가입니다. 이루다는 무용을 중심으로 영상, 사운드, 공간, 기술을 결합한 다원예술 작업을 선보여 온 안무가입니다. 인간의 양가성과 동시대의 불안정한 감각 구조에 주목하며, 신체와 미디어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감각적 경험을 탐구해왔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루다 안무가 님의 다양한 창작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2023 PLAP 최우수 선정작 〈디스토피아3〉
▪️기간: 2021.8.19(토) – 8.20(일)
▪️장소: 플랫폼엘 라이브홀(B2)
2023 PLAP 최우수 선정작 후속작 〈이루다 라이브〉
▪️기간: 2024.9.7(토) – 9.8(일)
▪️장소: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B2)
Q1. 2023 PLAP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7회로 진행된 2023 PLAP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신 이루다 안무가님께는 ‘양가성’이라는 키워드를 드리고자 합니다. 소녀와 여성,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블랙과 화이트, 역동성과 유려함. 이루다 안무가님의 작품은 서로 다른 두 지점이 마주한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상반된 가치들이 공존하는 작업 안에서, ‘양가성’이라는 단어가 안무가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안무가님의 창작 과정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인간 자체가 양가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강하면서도 불안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롭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고립을 선택하기도 하는, 그런 모순적인 감정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제 작업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 작품 안에서도 블랙과 화이트, 남성성과 여성성, 유려함과 파괴성, 전통과 현대 같은 서로 다른 결들이 계속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의 감정만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 서로 상반된 감각들이 동시에 존재할 때 발생하는 긴장이 더 큰 에너지에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무용 역시 완벽하게 정제된 움직임만으로는 인간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불안정함과 균열, 날것의 감정까지 함께 드러날 때 오히려 더 진실한 순간이 만들어진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에게 ‘양가성’은 단순한 대비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과 예술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작업의 흐름이나 주제의 맥락에서 두 시리즈 간의 어떤 연결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디스토피아3〉가 불안정한 시대 속 인간의 내면과 집단적 감각을 보다 추상적이고 시네마틱하게 풀어낸 작업이었다면, 후속작 〈이루다 라이브〉는 그 시선을 보다 개인적인 서사와 직접적인 퍼포먼스로 확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현실과 가상, 불안과 욕망,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대와 영상, 실제와 허구가 혼재된 감각을 통해 동시대의 불안정한 감각 구조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같은 흐름 안에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루다 라이브〉는 ‘라이브(live)’ 공연의 형식을 다시 되짚으며 무용 공연의 시간성과 가상공간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기존의 추상적 행위 중심 무용 형식에서 벗어나 렉처 퍼포먼스,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라이브 사운드 등을 결합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냈고, 제가 모든 것을 혼자 수행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의 메타적 리얼리티 쇼로 구성되었습니다.
관객이 마주하는 공간은 리얼리티와 가상이 혼재된 공간이자,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방’이며 동시에 현재를 생중계하는 무대가 됩니다. 시공간이 압축된 구조 안에서 관객은 이루다라는 인물의 감각과 세계관을 경험하게 됩니다.
영상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현실의 물리적 움직임과는 또 다른 의미로 작동합니다.
결국 〈이루다 라이브〉의 LIVE는 제가 살아온 현실의 삶,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를 동시에 생중계하는 독백이자 고백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복합적이고 혼종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 제 삶 속에 축적된 감정과 서사를 보다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PLAP 이후에는 보다 다양한 장르와 공간으로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극장 작업뿐 아니라 미디어아트, 패션, 도시 공간 기반 프로젝트, 대규모 야외 퍼포먼스 등 여러 형식의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서울시발레단 창단 사전공연 안무 작업에 참여했고, 저의 정체성이 담긴 ‘검은 발레슈즈’를 의미하는 블랙토무용단의 대표작 〈Nu Black〉으로 투어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블랙토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확장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5년에는 서울거리예술축제 총연출을 비롯해 서울어텀페스타 개막공연, DDP 서울라이트 퍼포먼스 등 대규모 도시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공성과 동시대성을 함께 고민하는 작업들을 이어왔습니다.
곧 공연을 앞두고 있는 6월에는 대한민국발레축제 기획공연 〈발레아리랑〉을 안무하며 클래식 발레 안에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전통적 움직임과 현대적 감각을 결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이루다, 《W》, 2020 / 사진: 옥상훈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당시 선보이셨던 PLAP 작업과 그 이후에 보여주신 작업 간에 어떠한 연결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PLAP에서의 경험이나 작업이 이후 안무가님의 예술적 방향이나 창작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함께 여쭙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PLAP이라는 프로그램이 안무가님의 예술 여정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PLAP은 제게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전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PLAP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제 작업 세계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무용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 깊이 가져가게 되었고, 이후 작업들에서도 그 흐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는 무용을 단순한 움직임의 예술이라기보다, 빛과 사운드, 공간, 기술, 감정이 함께 작동하는 하나의 총체적 감각 경험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의 정체성과 블랙토무용단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대적이면서도 보다 독자적이고 뚜렷한 색깔을 만들어가기 위해, 작업의 모든 순간 속에서 복합적인 감각을 발견하고자 더욱 유심히
관찰하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객관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PLAP은 그런 고민들을 보다 실험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도록 지지해준 소중한 플랫폼이었습니다. 단순히 작품 하나를 발표하는 기회를 넘어, 이후 작업의 방향성과 태도에도 큰 영향을 준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앞으로의 작업 방향이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함께 여쭙고 싶습니다.
최근 5월에는 서울시 어린이·청소년 동반 가족 대상 ‘공연봄날’ 프로젝트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석 무료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무용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부담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극장의 문턱을 최대한 낮춘 대중적인 공연이었고, 3일간 약 1,80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했습니다.
저는 국내 대중문화와 순수예술 사이를 연결하는 문화 생태계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예술을 경험하고 감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간 문화지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작업들 역시 실험성과 대중성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며 관객과의 접점을 확장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도시 공간과 신체, 기술적 감각을 연결하는 작업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터·사운드·비주얼과 무용수의 움직임, 호흡, 심박 등의 신체 반응을 연결하는 실험적인 퍼포먼스 구조를 구상하며, 공연과 전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도시와 인간, 기술과 감각 사이의 관계를 몸으로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다가오는 7월에는 World Dance Alliance IYCP 안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안무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움직임 언어와 감각들이 충돌하고 섞이는 과정을 통해 현지 무용수들과 어떤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장르의 경계를 고정하지 않고, 동시대의 감각을 가장 유기적인 방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작업들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몸이라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매체를 통해 가장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10주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원예술 분야를 꾸준히 지지하며 실험적인 작업들을 함께해온 플랫폼엘에 진심으로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술가에게는 자신의 언어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는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LAP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작가들에게 의미 있는 플랫폼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공간이 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2023년 PLAP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지금까지도 작업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플랫폼엘이 다양한 예술가들의 실험실이자 놀이터로서, 예술의 창조적인 상상과 영감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오래 남기를 기대합니다.